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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확신 사이 ( 외곽의 어느 구축 아파트를 바라보며)
달리는 머니 인프라 빌더 2026. 1. 16. 09:46유튜브를 켜도, 뉴스 포털을 열어도 온통 부동산 이야기뿐입니다.
아마 알고리즘덕에 비슷한 내용이 저에게 노출되는 거일수도 있겠지만,
다른 주변인들의 대화속에서도 큰맥락은 다르지 않습니다.
서울 집값은 잡힐 기미 없이 오르고, 전월세 물량은 갈수록 귀해진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누군가는 '초양극화'라는 단어로 이 현상을 진단하지만,
그 차가운 단어 속에 담긴 우리네 삶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사라진 사다리,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
정부의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제 내 집 마련은 '저축'의 영역이 아닌 '태생'이나 '운'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자산이 있는 사람들은 대출 없이도 부를 불려 나가고,
성실히 일해 시드머니를 모으는 이들에게는 문턱이 점점 더 높아지는 현실.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말이 가슴 깊이 박히는 요즘입니다.
사실 저 역시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부동산으로의 자금 쏠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째든 나라가 잘되야 나와 가족도 잘되지 않을까란 의식이 있으니까요.
어떤 일이든 한쪽으로 쏠리면 반드시 기울게 되어있고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난다 생각합니다.
이 쏠림 과정에서 한 채의 집도 없는 서민들이 느끼는 이 '고립감'은 누가 위로해 줄 수 있을까요?
평생 수도권에 내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함이 밤잠을 설칠 때가 많습니다.

아이에게 물려줄 것은 '집'인가 '삶의 태도'인가
가장으로서 가장 마음 아픈 지점은 역시 '아이의 미래'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이곳에서 아이가 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아이 역시 집 문제로 허덕이며 삶의 대부분을 소진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밤새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출발선부터 서울에 집을 가진 아이들과 비교되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속절없는 억울함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다시금 조용히 되짚어 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을 고통스럽게 쏟아부어 얻어낸 기술사 자격증, 그리고 25년여간 비바람 치는 날에도 묵묵히 일터를 지키며 가정을 먹여 살린 그 '성실함'이, 과연 저 부동산 전광판에 찍히는 가격표보다 가치가 낮은 것일까 하고 말이죠.
문득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떠오릅니다.
훗날 아이는 성실함 하나로 풍파를 견뎌온 아빠와, 영리하게 레버리지를 택해 자산을 불린 부자 아빠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자본주의라는 냉혹한 경기장에서 결과값만 놓고 본다면 부자 아빠가 승자임은 자명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자본주의의 성적표가 낮다고 해서, 한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가난한 아빠'의 삶을 진정 실패한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땀방울의 가치조차 '잘못 살아온 것'이라 치부되어야 하는 걸까요?
폭탄 돌리기와 초양극화 사이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은 늘 엇갈립니다.
인구가 줄어 부동산 시장이 폭발할 것이라는 '폭탄 돌리기' 이론과, 핵심지는 끝없이 오를 것이라는 '초양극화' 이론.
이 혼란스러운 전망 속에서 제가 내린 결론은 **'가족을 위한 캐슬(城)'**입니다.
남들이 말하는 대박 투자처는 아닐지라도,
경기도 외곽의 어느 구축 아파트가 우리 가족의 안식처가 되어준다면 그것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포모(FOMO)에 휩쓸려 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쟁일지도 모릅니다.

소음에서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걷기로 했다
부동산 커뮤니티의 자극적인 선동과 전문가들의 엇갈리는 전망은 이제 제게 그저 거대한 '소음'일 뿐입니다.
그 소음에 귀를 기울일수록 마음속엔 불안이라는 잡초만 무성해질 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지방의 주택을 매도하고 경기도 외곽에서 무주택자로 다시 시작하게 된 지금,
저는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기묘한 감정을 마주합니다.
집값이 떨어진다는 소식에 가슴 졸이던 시간에서 벗어난 홀가분함, 그리고 동시에 '집 없는 가장'으로서 문득문득 엄습하는 불안함이 공존하는 그런 상태 말입니다.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정성껏 그린 부분이 때로는 아쉽게 변하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얼룩이 지기도 하더군요.
처음엔 이 캔버스를 아예 찢어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25년 넘게 묵묵히 그려온 삶의 '밑그림'은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을 지켜온 그 단단한 선(線)들 위에,
이제는 경기도 외곽이라는 배경을 두고 새로운 색을 채색해 나가는 과정이라 믿기로 한 것입니다.
언젠가 마련할 20평 남짓한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자본주의의 투자 대상일지 모르나,
저에게는 우리 가족의 치열한 역사가 기록될 소중한 '영토'일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폭탄 돌리기'의 결말이 어떻게 끝이 나든 이제 상관없습니다.
저는 그저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우리 가족의 안온한 내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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